
작성일 : 2018-08-03 14:24
1355(공민왕 4)~1409(태종 9) 자(字)는 돈부(敦夫), 시호(諡號)는 익평(翼平), 판서(判書) 거경(居敬)의 아들. 공민왕 대 문과(文科)에 급제, 우왕 때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를 지내고 조선 개국 후 1393년(태조 2) 개성윤(開城尹)을 거쳐 중추원사(中樞院使)가 되어 서강(西江 : 예성강) 및 강화도(江華島)의 병선(兵船)을 점검했으며, 이해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에 갔다가 이듬해 귀국, 왜구(倭寇)의 침입에 대비했고, 1396년 도체찰사(都體察使)가 되어 이끼도(壹岐島)․쓰시마도(對馬島)의 왜구를 토벌 했다.
1398년(태조 7)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로서 제1차 왕자의 난에 방원(芳遠)을 도와 정사공신(定社功臣) 1등으로 단산부원군(丹山府院君)에 봉해졌다.
1400년(정종 2) 동북면 도순문사(東北面都巡問使)로 영흥부윤(永興府尹)을 겸임, 1410년(태종 1) 판삼군부사(判三軍府事)가 되고, 좌명공신(佐命功臣) 1등으로 우정승(右政丞)에 승진, 이어 영승추부사(領承樞府事)․우정승 겸 판병조사(判兵曹事)를 역임하고, 1406년 김사 형(金士衡)․이회(李薈) 등과 「역대제왕 혼일강리도(歷代帝王混一彊理圖)」를 편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