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8-02 15:29
자(字)는 순교(舜敎), 호(號)는 기재(夔齋). 1913년 중국(中國) 상해(上海)로 망명하였고 1919년 길림(吉林)에서 북군정서 길림분서고문(北軍政署吉林分署顧問)․전만주통일준비회 집행위원(全滿洲統一準備會執行委員)․북만주 신민부고문(北滿洲新民府顧問)․길림 성 성외교위원(吉林省城外交委員) 등을 지냈다.
1927년 일본형사(日本刑事)와 중국군경(中國軍警)의 기습으로 이탁(李鐸)․김동삼(金東三)․안창호(安昌浩)․오동진(吳東振) 등과 함께 체포되어 43일만에 석방되었고, 남북만주 한국독립운동단체 3부 통합회의에 길림 대표로 참석하였고 한국독립당 조직에 참여하였다.
1930년 길림성(吉林省) 수원현(綏遠縣)의 조위민(趙尉民) 소유의 땅을 운남성(雲南省) 곤양현(昆陽縣)에 귀속하려 할 때 이를 양수(讓受)받아 병대(兵隊)의 교련장(敎鍊場)으로 하려 하였으나 만주사변(滿洲事變)이 일어나 좌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