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8-02 15:26
1853(철종 4)~1936 자(字)는 주빈(周賓), 호(號)는 석촌(石村)․해관(海觀)․장위산인(獐位山人), 부사(府使) 회선(會善)의 아들. 남령위(南寧尉) 의선(宜善)에게 입양(入養). 1871년(고종 8) 직장(直長)으로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검열(檢閱)을 지내고 여러 벼슬을 거쳐 예조․이조의 판서(判書)를 역임, 1895년 이후 법부(法部)․탁지부(度支部)․내무(內務)의 대신(大臣)으로 10여회나 임명되었으나 모두 거절 하고 서울 교외의 장위산(獐位山) 밑에 은거했다.
글씨와 그림에 모두 뛰어났고 특히 해서(楷書)․행서(行書)․금석문(金石文)을 많이 썼으며, 죽란(竹欄)을 잘 그렸다. 한일합방 뒤에 일본정부의 남작(男爵)이 되었으나 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