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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평윤씨] 윤웅렬(尹雄烈)

작성일 : 2018-08-02 15:24

1840(현종 6)~1911 치호(致昊)의 아버지. 아산(牙山) 출신. 1856년(철종 7) 무과(武科)에 급제, 1861년 충청감영 중군 겸 공주 중군(忠淸監營中軍兼公州中軍), 이듬해 함격북도 북청 병마 우후 토포사(咸鏡北道北靑兵馬虞侯討捕使)가 되고 1878년(고종 15) 통리기무아문 참사(統理機務衙門參事) 등을 지내고, 1880년 별군관(別軍官)으로 수신사(修信使) 김홍집(金弘集)을 따라 일본에 다녀왔으며, 이듬해 함경남도 병마절도사(咸鏡南道兵馬節度使)를 거쳐 1882년 별기군(別技軍)이 신설되자 훈련원 하도감(訓鍊院下都監)의 신병대장(新兵隊長)의 영관(領官)이 되었으나 이해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일본의 나가사끼(長崎) 피했다.

그후 귀국하여 1884년 갑신정변(甲申政變)으로 개화당(開化黨) 내 각의 형조 판서(刑曹判書)가 되었으나 정변이 실패하자 1886년 능주(綾州)로 귀양갔다. 1894년 갑오경장(甲午更張)으로 개화파가 다시 집권하자 풀려 나와 경무사(警務使)․군부대신(軍部大臣)등을 지내고, 1896년 춘생문사건(春生門事件)에 가담했다가 실패하자 상해(上海)로 망명했다. 1910년 한일합방 때 일본정부에의해 남작(男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