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8-02 15:17
1797(정조 21)~1866(고종 3) 초명은 치수(致秀), 자(字)는 성여(成汝), 호(號)는 금범(錦帆), 시호(諡號)는 문헌(文獻), 참판(參判) 명렬(命烈)의 아들. 경렬(敬烈)에게 입양(入養). 1827년(순조 27)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사관(史官)이 되고 1834년 홍문관(弘文館)에 뽑혀 들어갔다. 1838 년(헌종 4) 태조(太祖)의 영정(影幀)을 보완하여 광명전(光明殿)에 옮길 때 집례(執禮)로서 일을 처리하였고, 1842년 대사성(大司成)에 올랐다.
1846년 의주부윤(義州府尹)을 거쳐 이조 참의(吏曹參議), 이어 대사성(大司成)․부제학(副提學)․예방승지(禮房承旨) 등을 역임, 1849년 형조 판서(刑曹判書)에 승진, 1853년(철종 4) 예조 판서로 존호도 감제조(尊號都監提調)를 겸직, 이듬해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으로 동지사(冬至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온 뒤 대사헌이 되었다.
1855년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형조 판서, 이듬해 함경도 관찰사(咸鏡道觀察使)를 지내고 1863년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로 진주사(陳奏使)가 되어 다시 청나라에 다녀와서 공조 판서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