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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평윤씨] 윤명열(尹命烈)

작성일 : 2018-08-02 15:13

1762(영조 38)~1832(순조 32) 자(字)는 언국(彦國), 호(號)는 석유(石囿), 시호(諡號)는 충헌(忠憲), 기동(起東)의 아들. 면동(冕東)에게 입양(入養). 1795년(정조 19)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丙科)를 급제, 주서(注書)에 임명되었으나 사퇴, 뒤에 감찰(監察)․지평(持平)․장령(掌令)․집의(執義)를 거쳐 우승지(右承旨)에 올랐다.

1805년(순조 5) 동래(東萊)에서 왜역관(倭譯官) 최 괴(崔 王回)가 왜인(倭人)과 공모, 인장(印章)을 위조하여 재화를 훔치려던 사건이 발생하지 동래부 안핵사(按覈使)가 되어 최 괴를 주살했다.

병조 참지(兵曹參知)를 거쳐 광주목사(光州牧使)로 재직중 도적을 잡지 못한 죄로 삭직(削職), 뒤에 형조 참의(刑曹參議)로 등용되고 강릉 부사(江陵府使)․대사간(大司諫)․좌승지(左承旨)를 역임, 1821년 호조 참판(戶曹參判)으로 동지 부사(冬至副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병조 참판(兵曹參判)에 전직, 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동지돈령부사(同知敦寧府事) 등을 역임, 1823년 강원도 관찰사로 나가 선정(善政)을 베풀었고,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가 되었으며, 뒤에 이조 참판(吏曹參判)․호조참판(戶曹參判)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