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8-02 15:02
1688(숙종 14)~1759(영조 35) 자(字)는 덕휘(德輝), 금천 현감(衿川縣監) 상명(商明)의 아들. 1725년(영조 1) 생원(生員)으로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검열(檢閱)이 되고, 1727년 사관(史官)으로 윤 증(尹 拯)이 그의 스승 송시열(宋時烈)을 배반한 죄를 추론(追論)하여 삭직(削職)되었다.
이듬해 병조 좌랑(兵曹佐郞)으로서 기용, 지평(持平)을 거쳐 1729년 사서(司書)로 노론(老論) 4대신을 신원(伸寃)하고 소론(少論) 이광좌(李光佐)의 죄를 극언한 후, 경성부판관(鏡城府判官)에 좌천되었다.
1731년(영조 7) 진위사(鎭慰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와 지평(持平)이 되고, 수찬(修撰)을 거쳐 부교리(副校理)로 있을 때 이광좌의 죄를 논하다가 갑산(甲山)에 유배된 민형수(閔亨洙)를 변호하다가 다시 고원군수(高原郡守)로 좌천되었으나 곧 교리(校理) 겸 한학교수(漢學敎授)로 발탁되었다.
이어 호조 참의(戶曹參議)․대사간(大司諫)․좌부승지(左副承旨)․대사성(大司成)․도승지(都承旨)․강화부 유수(江華府留守) 등을 역임, 대사헌에 올라 송인명(宋寅明)이 당(黨)을 만들어 국권(國權)을 전횡(專橫)한다고 탄핵하다 파직되었다. 뒤에 예조 참판(禮曹參判)에 기용, 개성부 유수(開城府留守)․강원도 관찰사(江原道觀察使)를 거쳐 다시 대사헌(大司憲)에 이르러 병사했다. 글씨를 잘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