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8-02 15:02
1680(숙종 6)~1741(영조 17) 자(字)는 중화(仲和), 호(號)는 백하(白下)․학음(鶴陰), 지평(持平) 세선(世善)의 아들. 1712년(숙종 38) 진사시(進士試)에 장원, 이듬해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로 급제, 부수찬(副修撰)을 거쳐, 1723년(경종 3) 응교(應敎)로서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명 나라에 다녀왔다.
1727년(영조 3) 이조 참판(吏曹參判)으로 대제학(大提學)을 겸직, 이듬해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감호제군사(監護諸軍使)가 되고, 1729년 공조 판서(工曹判書)에 올랐다.
예조 판서를 거쳐 1735년 원자 보양관(元子輔養官), 1739년(영조 15) 경기도 관찰사(京畿道觀察使)를 역임, 평안도 관찰사에 전직하여 관하를 순찰하다 벽동(碧潼)에서 객사 했다. 당대의 이름난 서예가로서 송나라 미남궁체(米南宮體)를 완전히 터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