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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평윤씨] 윤계(尹 堦)

작성일 : 2018-08-02 14:44

1622(광해군 14)~1692(숙종 18) 자(字)는 태승(泰升), 호(號)는 하곡(霞谷), 시호(諡號)는 익정(翼正), 영의정 두수(斗壽)의 증손, 첨정(僉正) 면지(勉之)의 아들. 1650 년(효종 1)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1662년(현종 3) 증광문과(增廣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승문원(承文院)에 보직되고, 1664년 훈련도감(訓鍊都監)의 낭청(郎廳)으로 있었다.

이듬해 전적(典籍)․감찰(監察)․예조 좌랑(禮曹佐郞)을 역임, 1668년 직강(直講)으로서 황해도 도사(黃海道都事)를 겸하고, 이듬해 사서(司書), 그호 문학(文學)․지평(持平)․제주목사(濟州牧使) 등을 지냈다.

1675년(숙종 1) 황해도 관찰사(黃海道觀察使)로서 원접사(遠接使) 오시수(吳始壽)가 중국 사신에게 선왕 효종(孝宗)이 신하의 경제를 받았다는 거짓말을 했다하여 이를 극론(極論)하다가 영광(靈光)에 유배, 이어 경성(鏡城)에 이배(移配)되었다가 이듬해 풀려 나왔다.

1678년 진주목사(晋州牧使), 1680년 동부승지(同副承旨)를 거쳐 이듬해 사은부사(謝恩府使)로서 청나라에 다녀오고 1682년 호조 판서(戶曹判書)에 승진했다.

1684년 형조판서에 전임했다가 이어 강화(江華)․개성부 유수(開城府留守)를 거쳐, 1689년 좌참찬(左參贊)이 되었으나 이해 기사환국(己巳換局)에 남인(南人)의 집권으로 송시열(宋時烈)과 함께 강진(康津)에 유배되어 죽었다. 문장․글씨가 뛰어났으며, 1694년 신원(伸寃)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