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8-02 14:42
1591(선조 24)~1666(현종 7) 자(字)는 낙천(樂天), 호(號)는 행명(행溟), 두수(斗壽)의 손자, 관찰사 훤(喧)의 아들. 종조(從祖) 윤근수(尹根壽)에게 학문을 배우고 1612년(광해군 4)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1620년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를 급제, 검열(檢閱)․언관(言官) 등을 역임했다.
인조(仁祖) 초 경연관(經筵官)이 되고, 1627년(인조 5)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아버지가 평안도 관찰사(平安道觀察使)로서 적의 침입을 막지 못한 죄로 사사(賜死)가 되자 은거했다가 1629년 부교리(副校理)에 등용되고,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丙子胡亂)때 남한산성(南 漢山城)에 왕을 호종(扈從)하여 환도 후 형조 참의(刑曹參議)가 되고, 1643년 통신사(通信士)로 일본에 다녀왔다.
1654년(효종 5) 경기도 관찰사로서 소송사건을 속결하지 않고 민원(民怨)을 사서 도배(徒配), 뒤에 풀려 나와 1657년 실록수정청 당상(實錄修正廳堂上)이 되어「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편찬에 참여했고, 대제학(大提學)에 이어 1633년(인조 11) 공조 판서(工曹判書) 에 이르렀다. 시(詩)와 글씨에 뛰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