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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평윤씨] 윤수겸(尹守謙)

작성일 : 2018-08-02 14:38

1573(선조 6)~1624(인조 2) 자(字)는 명익(鳴翼), 시중(時中)의 아들. 1601년(선조 34) 진사(進士)로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로 급제, 이듬해 주서(注書)가 되고, 1603년 감찰(監察)로서 사은겸 진주사(謝恩兼陳奏使)의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해에 병조정랑(兵曹正郞)으로서 춘추관 기주관(春秋館記注官)을 겸임, 임진왜란 때 불탄 왕조실록(王朝實錄)의 재간(再刊)에 참여하고, 1604년 예조 좌랑(禮曹佐郞)․정언(正言)․사서(司書)를 역임했다. 이듬해 병조 정랑(兵曹正郞)을 거쳐 1607년 전라도 도사(全羅道 都事), 1608년(광해군 즉위) 헌납(獻納)이 되고, 이듬해 군자감정(軍資監正)으로 「선조실록(宣祖實錄)」 편찬에 참여, 1610년 서흥 부사(瑞興府使) 김직재(金直哉)의 무옥(誣獄)에 관련되어 추국을 당했다.

1612년 경상도 양전사(慶尙道量田使)가 되어 양전절목(量田節目)의 문란을 시정하는데 힘썼으며, 1614년 순천부사(順天府使)를 거쳐 동래부사(東萊府使)가 되었을 때, 쓰시마 도주(對馬島主) 소오(宗義智)가 차왜(差倭 : 사절)와 서계(書契)를 보내어 울릉도(鬱陵島)가 일본 영토임을 주장하자 이를 반박, 조선의 영유권을 명확히 했다.

1617년 황연평안등도 조도사(黃延平安等道調都事)로서 철(鐵)을 많이 영납(營納)하였고, 1619년 호조 참판(戶曹參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