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8-02 14:37
1571(선조 4)~1644(인조 22) 자(字)는 정춘(靜春), 호(號)는 장주(長洲)․천상(川上), 시호(諡號)는 장익(章翼), 영의정 두수(斗壽)의 아들. 성 혼(成 渾)의 문인. 1589년(선조 22) 진사(進士)가 되고, 1594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사관(史官)이 되었다가 1596년 병조 좌랑(兵曹佐郞)에 승진하고 이어 사서(司書)․장령(掌令)․필선(弼善)․사간(司諫) 등을 거쳐 전라․경상도 관찰사로 나가 치적을 올렸다.
1613년(광해군 5) 계축옥사(癸丑獄事)에 관련, 삭직(削職)당했다가 뒤에 다시 기용되었고 1618년 동지겸 진주사(冬至兼陳奏使)로 명나라에 다녀와 공조․예조의 참판(參判)을 지냈고,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 때 장흥(長興)․아산(牙山) 등지에 유배되었다가 1627년(인 조 5)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기용되어 한성부 좌윤(漢成府左尹)․청주 목사(淸州牧使)․호조와 형조의 참판(參判)을 지냈으며, 1636년 병자호란(丙子胡亂)에는 왕을 남한산성에 호종(扈從), 적진에 왕해하면서 화의(和議) 교섭을 했다.
환도 후 도승지(都承旨)가 되어 청나라와의 외교를 전담했고,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형조 판서를 거쳐 1639년 우찬성(右贊成)으로서 주청사(奏請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오고 1641년 공조 판서가 되었다. 글씨를 잘 썼으며, 영의정(領議政)에 추증(追增)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