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8-02 14:37
1564(명종 19)~1638(인조 16) 초명은 양(暘), 자(字)는 시회(時晦), 호(號)는 도재(陶齋)․청강(晴江), 시호(諡號)는 정민(靖敏), 영의정 두수(斗壽)의 아들. 성 혼(成渾)의 문인. 1582년(선조 15)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1595년(선조 28)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정자(正字)에 이어 전적(典 籍)에 특진, 내외 관직을 거쳐 우승지(右承旨)에 이르렀다.
1613년(광해군 5) 계축옥사(癸丑獄事)에 관련, 파직되고 1620년 서반직(西班職)에 여러번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 후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부총관(副摠管) 등을 거쳐 한성부(漢城府)의 좌․우윤(左右尹)을 역임. 이듬해 이 괄(李 适)의 난에 왕을 공주(公州)로 호종,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올랐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왕을 강화(江華)에 호종, 화의를 반대 했으며 1632년 예조 참판(禮曹參判)을 지냈고, 1636년 병자호란(丙子胡亂)에 왕을 남한산성에 호종, 1637년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