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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평윤씨] 윤방(尹 昉)

작성일 : 2018-08-02 14:36

1563(명종 18)~1640(인조 18) 자(字)는 가회(可晦), 호(號)는 치천(稚川), 시호(諡號)는 문익(文翼), 영의정 두수(斗壽)의 아들. 이 이(李 珥)의 문인. 1582년 진사(進士)가 되고, 1588년 식년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 승문원 정자(承文院正字)가 되었다.

1591년 아버지가 당쟁(黨爭)으로 유배되자 사직되었다가 이듬해 아버지가 다시 재상(宰相)이 됨으로써 정언(正言)으로 등용, 이어 지평(持平)․교리(校理)․이조 좌랑(吏曹佐郞)․전적(典籍)․응교(應敎)를 지냈다.

직강(直講)을 거쳐 사예(司藝)에 재직중 또 아버지가 파직당하자 군기시 첨정(軍器射僉正)에 전직되고, 1597년 경상도 순어사(慶尙道巡禦使)로 나갔다가 이어 군기감정(軍器監正)․평산 부사(平山府使)를 지냈다. 1601년 아버지가 죽자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에 습봉(襲封)되고, 병조 참판(兵曹參判)으로 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를 겸 직하여 임진왜란으로 불탄 실록(實錄)의 재간(再刊)에 참여하였다.

도승지(都承旨)․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지의금부사(知義禁府使)․형조 판서(刑曹判書) 등을 역임, 1618년(광해군 10) 인목대비(仁穆大妃)를 폐위하여 서인(庶人)으로 하자(字)는 정청(庭請)에 불참하고 사직, 은퇴했다가 1623년에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예조 판서(禮曹 判書)에 등용되었다. 이어 우의정에 오르고 좌의정을 거쳐 1627년(인조 5) 영의정(領議政)이 되고, 정묘호란(丁卯胡亂)이 일어나자 인조를 강화(江華)에 호종(扈從)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丙子胡亂)에는 묘사 제조(廟社提調)로 40여의 신주(神主)를 모시고 강화에 피난하여 땅속에 파묻어 화를 면하게 했으나 1638년 인순왕후(仁順王后)의 신주를 분실하고 나머지 신주를 말에 함부로 실어 한성(漢城)에 옮겼다는 죄로 파직, 연안(延安)에 유배되었다가 곧 전리방귀(田里放歸)되었다. 1640년(인조 18) 풀려나와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