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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평윤씨] 윤근수(尹根壽)

작성일 : 2018-08-02 14:28

1537(중종 32)~1616(광해군 8) 자(字)는 자고(子固), 호(號)는 월정(月汀)․외암(畏菴), 시호(諡號)는 문정(文貞), 군자감정(軍資監正) 변(忭)의 아들, 영의정 두수(斗壽)의 아우, 이 황(李 滉)의 문인. 1558년(명종 13)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주서(注書)․봉상시주부(奉常射主簿)․연천현감(漣川縣監)을 역임, 1562년 부수찬(副修撰)으로 조광조(趙光祖)의 설원(雪冤)을 상소하여 과천 현감(果川縣監)에 좌천되었다.

이듬해 교검(校檢)이 되고 이어 병조 좌랑(兵曹佐郞)․지제교(知製敎)․이조좌랑(吏曹佐郞)․교리(敎理)를 역임, 1567년(명종 22)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했다. 이어 사인(舍人)․집의(執義)․응교(應敎)를 지내고 1572년(선조 5) 동부승지(同副承旨)를 거쳐 대사성(大司成)에 승진, 이듬해 주청부사(奏請副使)로 명나라에 가서 종계변무(宗系辯誣)를 했다.

귀국 후에 부제학(副提學)․대사헌(大司憲)․경기도 관찰사(京畿道觀察使)를 지내다가 서인(西人)으로서 1578년에 대간(臺諫)의 탄핵을 받고 파직, 이듬해 강릉 부사(江陵府使)로 역임, 1589년 공조 참판(工曹參判)으로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명나라에 가서 다시 종계변무를 했다.

돌아와 형조 판서에 승진, 대사헌․이조 판서를 지내고, 이듬해 종계변무(宗系辯誣)의 공으로 광국공신(光國功臣) 1등에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으로 봉해졌으며, 이어 우찬성(右贊成)에 올랐다가 1591년 서인 정 철(鄭 澈)이 건저문제(建儲問題)로 화를 입자 같은 서인으로 형 두수와 함께 삭직(削職)당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예조판서로 등용되어 왕을 호종(扈從), 지경연사(知經莚事)․양관 대제학(兩館大提學)․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지성균관사(知成均館事) 등을 모두 겸임, 한편 문안사(問安使)․원접사(遠接使)․주청사(奏請使) 등으로 명나라와의 외교를 담 당, 광녕(廣寧)에 세 번, 요동(遼東)에는 여섯 번이나 왕래하며 국난 극복에 힘썼다.

그후 좌찬성(左贊成)이 되어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를 겸임하고, 1604년(선조 37)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에 봉해졌으며, 1606년 선조가 죽자 왕의 묘호(廟號)를 조(祖)로 칭할 것을 주장하여 이를 실현케 했다.

성리학(性理學)에 밝아 이 황(李 滉)․조 식(趙 植)을 찾아 주자(朱子)와 육구연(陸九淵 : 상산)의 학문을 토론했고, 성 혼(成 渾)․이 이(李 珥)와도 막역한 사이였다. 문장과 글씨에 뛰어나 당대의 거장(巨匠)으로 일컬어졌으며, 특히 그의 글씨는 영화체(永和體)라 하여 격찬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