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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평윤씨] 윤은보(尹殷輔)

작성일 : 2018-08-02 14:25

1468(세조 14)~1544(중종 39) 자(字)는 상경(商卿), 시호(諡號)는 정성(靖成), 첨정(僉正) 훤(萱)의 아들. 1494년(성종 25)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사관(史官)에 뽑혔고, 이듬해 교검(校檢)으로 춘추관 기사관(春秋館記事官)을 겸직, 「성종실록(成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했다. 1497년(연산 군 3) 예관(禮官)으로 문소전(文昭殿)에 제사를 지낼 때 제4실의 신주(神主)를 떨어뜨려 파손케 한 죄로 장류(杖流)되었다가 이듬해 풀려 나와 정언(正言)으로 기용, 지평(持平)․집의(執義) 등을 역임하고, 1506년(중종 1) 춘추관 편수관(春秋館編修官)이 되어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의 편찬에 참여했다.

1509년 쓰시마도 경차관(對馬島敬差官)으로 가서 쓰시마 도주(對馬島主)에게 국서(國書)를 전하여 왜구의 침범을 금하도록 요청했고, 1513년 경상도 암행어사(慶尙道暗行御史), 이듬해에 사성(司成)을 거쳐 부제학(副提學)에 오르고 1517년 황해도 관찰사로 나갔다.

이어 이조 참판(吏曹參判)을 지냈으며, 1521년(중종 16) 대사헌(大司憲)으로서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오고, 이듬해 공조 참판․예조 판서, 1525년 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로 이조 판서를 겸직한 뒤 평안도 관찰사로 나갔다가 1527년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다음해에 호조와 예조의 판서(判書)를 역임.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로 1529년 주청사(奏請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해 대사헌에 재임, 이듬해 병조 판서(兵曹判書)․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등을 거쳐 1533년 좌찬성(左贊成), 1535년 우의정(右議政)에 오르고, 1537년 좌의정(左議政)을 거쳐 영의정(領議政)을 지낸 뒤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으며, 1543년(중종 38)에 왕명(王命)으로「대전후속록(大典後續錄)」을 편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