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8-02 14:24
?~1387(우왕 13)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 석(碩) 증손. 대호군(大護軍) 보(寶)의 아들. 무예(武藝)에 뛰어나고 지략(智略)이 있었다. 공민왕(恭愍王) 말년 한 안(韓 安)․홍 윤(洪 倫) 등이 왕명에 의해 강제로 여러 비빈(妃嬪)을 능욕하던 무렵, 익비(益妃)와 사통하라는 명을 거절하여 한 때 서인(庶人)으로 깎였다.
우왕(禑王) 때 밀직 부사(密直副使)로서 경상도 부원수(慶尙道副元帥)로 나가 의성현(義城縣) 등지에 침입한 왜구(倭寇)와 안동(安東)․예안(禮安)에서 싸우다가 패전, 부상을 당했다.
1383년(우왕 9) 경상도 도순문사(慶尙道都巡問使)가 되어 합포(合浦)에 주둔, 진주목사(晋州牧使) 박자안(朴子安)과 함께 함양군(咸陽郡)에 침입한 왜구를 격퇴, 왜구의 근거지 축산도(丑山島)에 선졸(船卒)을 배치했다.
왜구의 침입이 차츰 없어지자 병기를 개조, 농구를 만들고 둔전(屯田)을 두어 군량에 충당하는 등 치적을 올렸으며,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