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휘(諱)는 변(?)이요, 자는 도승(道升)이니, 전계 대원군(全溪大院君)의 제3자이다. 어머니는 용성 부대부인(龍城府大夫人) 염씨(廉氏) [관적(貫籍)이 용담(龍潭)이니, 학생 증 영의정 염성화(廉成化)의 따님이다.]이다. 신묘년(순조 31) 6월 17일 정유(丁酉)에 경행방(慶幸坊)의 사제(私第)[전계 대원군의 집이다]에서 탄강(誕降)하였다. 기유년(헌종 15) 6월 6일 임신(壬申)에 헌종이 승하(昇遐)하자, 순원 왕후(純元王后)의 명으로 강화도에서 맞아들여 헌종의 대통(大統)을 잇게 하였다. 고(考)는 순조(純祖)요, 모비(母妃)는 순원 왕후(純元王后) 김씨(金氏)[관적이 안동(安東)이니, 영안 부원군(永安府院君) 김조순(金祖淳)의 따님이다] 이다. 처음에는 덕완군(德完君)에 봉해졌다가 9일 을해(乙亥)에 관례(冠禮)를 행하고 창덕궁(昌德宮)의 인정문(仁政門)에서 즉위하였다. 계해년(1863)에 승하하니, 재위 14년이요, 춘추는 33세이다.
계사(繼嗣)는 없고 딸 하나[궁인(宮人) 범씨(范氏) 소생이다]를 두었다. 장지(葬地)는 예릉(睿陵)[고양(高陽)]의 희릉(禧陵) 우강(右岡)인데, 갑자(甲子) 4월 7일에 장례를 모셨고, 표석(表石)이 있다]이다. 비(妃) 명순 대비(明純大妃) 김씨(金氏)[관적은 안동(安東)이다]는 영돈녕부사 영은 부원군(永恩府院君) 김문근(金汶根)의 따님인데, 정유년(헌종 3) 3월 23일 경자(庚子)에 탄강하여 신해년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존시(尊諡)를 문현 무성 헌인 영효(文顯武成獻仁英孝)라고 올리고, 묘호(廟號)는 철종(哲宗)이다. 다음해 갑자년 4월 7일 정축(丁丑)에 예릉(睿陵)에 대장(大葬)하였는데, 실은 희릉(禧陵)의 오른쪽 산등성이다.
기유년 6월 임신일(壬申日)에 헌종 대왕(憲宗大王)께서 승하하시고 후사(後嗣)가 없자 순원 왕후께서 이르기를, ‘영종 대왕(英宗大王)의 혈맥(血脈)은 오직 헌종(憲宗)과 임금뿐이다.’ 하고, 드디어 대책(大策)을 정하고 강화(江華)의 잠저(潛邸)에서 봉영(奉迎)하여 왔다. 처음에 덕완군(德完君)에 봉하였다가 그 달 초 9일에 관례(冠禮)를 행하고 빈전(殯殿)에서 대보(大寶)를 전수받은 다음 인정문(仁政門)에서 즉위(卽位)하였다.
1남 6녀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