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종 덕문 익무 순인 선효 대왕(景宗德文翼武純仁宣孝大王)의 휘(諱)는 균이고, 자(字)는 휘서(輝瑞)이니, 숙종 대왕(肅宗大王)의 장자(長子)이며 현종 대왕(顯宗大王)의 손자(孫子)이다. 처음에 숙종이 오래도록 후사(後嗣)가 없음을 근심하셨는데, 희빈(禧嬪) 장씨(張氏)가 무진년 10월 28일에 왕을 탄생하니, 숙종이 매우 기뻐하시어 여러 대신을 불러서 이르시기를, “나라의 근본이 정해지지 않아서 인심이 매인 곳이 없었으니, 오늘의 큰 계책(計策)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하시고, 마침내 원자(元子)의 칭호(稱號)로 정하셨고, 세 살 때에 왕세자(王世子)로 책봉(冊封)되셨다. 네 살 때에 처음으로 《천자문(千字文)》을 배웠는데, 숙종께서 친히 서문(序文)을 지어 주며 이르시기를, “저궁(儲宮)이 방금 이 책을 강습(講習)하는데, 성품이 총명하여 심지(心智)가 날로 자라나니 학문에 뜻을 더함이 바로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하였다.
8세 때 입학례(入學禮)를 행하였는데, 그 주선(周旋)함이 모두 절도에 맞고, 강(講)하는 음성이 크고도 맑아서 교문(橋門)을 에워싸고 듣는 인사(人士)들이 서로 경하(慶賀)해 마지않았다. 이 해에 관례(冠禮)를 행하고 태묘(太廟)에 알현(謁見)하였다. 갑진년 7월에 병에 감염되어 8월 25일에 창경궁(昌慶宮) 별전(別殿)에서 영원히 군신(群臣)을 버리시니, 재위(在位)하신 지 4년이며, 춘추(春秋)는 37세였다. 대소 신료와 함께 왕의 공덕(功德)을 의논하고 삼가 시호(諡號)를 올리기를, ‘덕문 익무 순인 선효(德文翼武純仁宣孝)’라 하고, 묘호(廟號)를 ‘경종(景宗)’이라 하였으며, 능호(陵號)를 ‘의릉(懿陵)’이라 하였다. 그리고 이 해 12월 16일 을유(乙酉)에 왕을 양주(楊州) 치소(治所)의 남쪽 신좌(申坐)의 남쪽 신좌(申坐) 인향(寅向)의 언덕에 받들어 안장(安葬)하니, 곧 새로 고른 좋은 택조(宅兆)였다.
왕비(王妃) 심씨(沈氏)는 증(贈) 영의정(領議政) 청은 부원군(靑恩府院君) 심호(沈浩)의 따님으로, 무술년에 빈(嬪)으로 훙서(薨逝)하여 경자년(庚子年)에 추책(追冊)하여 왕비(王妃)가 되었다. 계비(繼妃) 어씨(魚氏)는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 함원 부원군(咸原府院君) 어유귀(魚有龜)의 따님이다. 영조 6년 춘추 26세로 승하하였다. 능은 의릉(懿陵)이다. 후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