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찾기

조상찾기

HOME > 조상찾기

[전주이씨] 연산군(燕山君)

작성일 : 2018-08-01 15:30

연산군은 이름은 융이며, 성종(成宗)의 원자요, 폐비 윤씨(尹氏)가 낳았다. 성화(成化) 병신년에 나서 홍치(弘治) 을묘년에 왕위에 오르고, 정덕(正德) 병인년에 폐위되니 왕위에 있은 지 12년 만에 연산군(燕山君)으로 강봉되어 교동(喬桐)으로 내쫓겼다. 그 해 12월에 세상을 떠나니 수(壽)가 31세였다. 묘는 양주(楊洲) 해등촌(海等村)에 있다.
폐비 신씨(愼氏)는 본관은 거창(居昌)이며, 영의정 승선(承善) 거창부원군(居昌府院君)의 딸이다. 연산이 폐위되자 위호를 낮추어 거창군부인(居昌郡夫人)이 되고 정청궁(貞淸宮)에 나가 있다가 중종(中宗) 때에 세상을 떠났다. 묘는 망우리(忘憂里) 폐비 윤씨 묘의 국내(局內)에 있다. 제사 받드는 것은 외손 구엄(具?)에게 전해졌는데, 구엄은 또 외손 이안눌(李安訥)에게 전해 주었다.
아들 넷과 딸 둘을 두었다. 1남 폐위된 세자 황. 정사년에 낳다. 폐주(廢主) 9년 계해에 사자를 보내어 세자로 책봉하였다. 연산군이 이미 폐위되니 세자도 폐위되어 정선(旌善)으로 귀양갔다. 2남 인(仁). 처음에 창녕대군(昌寧大君)으로 책봉했다가 뒤에 그 칭호를 깎아버렸다. 딸 하나는 구문경(具文璟)에게 시집갔다. 처음에 능양위(綾陽尉)로 책봉했다가 뒤에 그 칭호를 깎아버렸다. 서자 성(誠). 처음에 양평군(陽平君)으로 책봉했다가 뒤에 그 칭호를 깎아버렸다.
서자 돈수(敦壽). 서녀는 신거홍(愼居弘)에게 시집갔다. 벼슬은 판관이다. 후취로 시집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