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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이씨] 세종(世宗)

작성일 : 2018-08-01 15:25

세종 장헌 영문 예무 인성 명효대왕(世宗莊憲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은, 휘는 도(?)요, 자는 원정(元正)이니 태종의 셋째 아들이다. 원경왕후(元敬王后)가 홍무 30년 정축, 태조 6년 4월 10일 임진에 한양(漢陽) 잠저에서 낳았다. 무자년(1408)에 처음으로 충녕군(忠寧君)에 봉해졌다가 임진년(1412)에 대군(大君)으로 승진되었고, 무술년(1418)에 세자(世子)로 책봉되었다. 그 해 8월에 경복궁(景福宮) 근정전(勤政殿)에서 왕위를 물려받아 경태(景泰) 원년 경오 2월 17일 임진에 별궁(別宮) 영응대군(永膺大君)의 집에서 승하하니, 왕위에 있은 지 32년이고, 수는 54세였다. 능은 영릉(英陵). 처음에는 광주(廣州) 헌릉(獻陵)의 서편 산뫼에 장사했다가, 예종(睿宗) 원년 기축 3월 6일에 여주(驪州) 서북편 성산(城山)으로 옮겼으며, 표석(表石)이 있다. 이승소(李承召)가 묘지(墓誌)를 지었고, 윤회(尹淮)가 행장을 지었다. 처음에는 정인지가 글을 지은 신도비(神道碑)가 있었으나, 능을 옮길 때 묻어두고 쓰지 않았다.
왕비(王妃) 선인 제성 소헌 왕후(宣仁齊聖昭憲王后) 심씨(沈氏)는, 본관은 청송(靑松)이니 영의정(領議政)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 안효공(安孝公) 심온(沈溫)의 딸이다. 홍무 28년 을해 9월에 양주(楊州) 사제(私第)에서 났으며, 영락(永樂) 무자년에 가례(嘉禮)를 행하여 처음에는 경숙옹주(敬淑翁主)로 봉해졌다가, 정유년(1417)에 삼한국 대부인(三韓國大夫人)으로 봉해지고, 무술년에 경빈(敬嬪)으로 책봉되었다. 얼마 안 되어 공비(恭妃)로 승진되었고 임자 선덕(宣德) 7년에 왕비가 되었다. 정통(正統) 병인 11년 세종 28년 3월 24일 신묘에 별궁 세조(世祖)의 잠저에서 승하하니, 수가 52세였다. 문종(文宗) 2년에 선인 제성(宣仁齊聖)이라는 존호(尊號)를 올렸다. 능은 영릉 세종의 능과 같은 언덕에 있다. 애초에는 헌릉(獻陵) 서편 산에 장사지냈다가 기축년(1469)에 이장하였다.
18남 4녀를 두었다. 제1남은 문종이다. 제2남은 세조이다. 제3남은 안평대군(安平大君) 용(瑢). 시호는 장소(章昭)다. 연일정씨(延日鄭氏)에게 장가들었으니, 판서(判書) 증 좌의정(贈左議政) 연(淵)의 딸이다. 2남을 두었으며, 계유년(1453)에 화를 입었고, 뒤에 신원(伸寃)되었다.제4남 임영대군(臨瀛大君) 구(?).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의령 남씨(宜寧南氏)에게 장가들었으니, 우의정(右議政) 충간공(忠簡公) 지(智)의 딸이다. 전주최씨(全州崔氏)에게 재취하였으니, 봉례(奉禮) 증 우의정(贈右議政) 승령(承寧)의 딸이다. 5남 2녀를 두었다. 제5남 광평대군(廣平大君) 여(璵). 시호는 장의(章懿)이다. 평산신씨(平山申氏)에게 장가들었으니, 동중추부사 증 좌의정 자수(自守)의 딸이다. 1남을 두었다. 제6남 금성대군(錦城大君) 유(瑜). 시호는 정민(貞愍)이다. 전주최씨(全州崔氏)에게 장가들었으니, 좌찬성 증 좌의정 경절공(敬節公) 사강(士康)의 딸이다. 1남을 두었다. 정축년(1457)에 화를 입었고, 그 뒤에 신원되었다. 제7남 평원대군(平原大君) 임(琳). 시호는 정헌(定憲)이다. 처음의 시호는 정덕(靖德)이다. 남양홍씨(南陽洪氏)에게 장가들었으니, 부사(府使) 증 좌의정 이용(利用)의 딸이다. 제8남 영응대군(永膺大君) 염(琰). 시호는 경효(敬孝)이다. 해주 정씨(海州鄭氏)에게 장가들었으니, 참판 증 좌의정 충경(忠敬)의 딸이다. 여산송씨(礪山宋氏)에게 장가들었으니, 동지중추부사 증 좌의정 복원(復元)의 딸이다. 1녀를 두었다.
제1녀 정소공주(貞昭公主). 일찍 죽었다. 제2녀 정의공주(貞懿公主). 연창위(延昌尉) 양효공(良孝公) 안맹담(安孟聃)의 아내이다. 4남 2녀를 두었다. 맹담의 본관은 죽산(竹山)이고, 아버지는 도관찰사(都觀察使) 망지(望之)이다. 1남 화의군(和義君) 영(瓔). 영빈(令嬪) 강씨(姜氏)가 낳았다. 시호는 충경(忠景)이다. 밀양박씨(密陽朴氏)에게 장가들었으니, 참판 증 좌찬성(贈左贊成) 공효공(恭孝公) 중손(仲孫)의 딸이다. 계유년에 화를 입었다. 2남 계양군(桂陽君) 증(?). 신빈(愼嬪) 김씨가 낳았다. 좌익 공신(佐翼功臣)이고, 시호는 충소(忠昭)이다. 청주한씨(淸州韓氏)에게 장가들었으니, 좌의정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 양절공(襄節公) 확(確)의 딸이다. 3남 3녀를 두었다. 3남 의창군(義昌君) 공(?). 신빈 김씨가 낳았다. 시호는 강도(剛悼)이다. 연안김씨(延安金氏)에게 장가들었으니, 도관찰사 증 찬성 수(脩)의 딸이다. 1남 2녀를 두었다. 4남 한남군(漢南君) 어. 혜빈(惠嬪) 양씨(楊氏)가 낳았다. 정축년에 귀양가서 죽었으며, 시호는 정도(貞悼)이다. 안동권씨(安東權氏)에게 장가들었으니, 정랑(正郞) 증 지돈녕부사 격(格)의 딸이다. 1남 1녀를 두었다.
5남 밀성군(密城君) 침(琛). 신빈 김씨가 낳았다. 익대 좌리공신(翊戴佐理功臣)이고, 시호는 효희(孝僖)이다. 여흥민씨(驪興閔氏)에게 장가들었으니 판윤 증 찬성 승서(承序)의 딸이다. 4남 2녀를 두었다. 6남 수춘군(壽春君) 현(玹). 혜빈 양씨가 낳았다. 시호는 안도(安悼)이다. 영일정씨(迎日鄭氏)에게 장가들었으니, 부윤 증 좌찬성 위양공(威襄公) 자제(自濟)의 딸이다. 1녀를 두었다. 7남 익현군(翼峴君) 곤(?). 신빈 김씨가 낳았다. 좌익공신(佐翼功臣)이고, 시호는 충성(忠成)이다. 평양조씨(平壤趙氏)에게 장가들었으니, 소윤 증 찬성 철산(鐵山)의 딸이다. 1남 1녀를 두었다. 8남 영풍군(永豊君) 전(?). 혜빈 양씨가 낳았다. 정축년에 화를 입었으며, 시호는 정렬(貞烈)이다. 순천박씨(順天朴氏)에게 장가들었으니, 참판 팽년(彭年)의 딸이다. 1녀를 두었다. 9남 영해군(寧海君) 당(?). 신빈 김씨가 낳았다. 시호는 안도(安悼)이다. 평산 신씨(平山申氏)에게 장가들었으니, 한성윤 증 찬성 윤동(允童)의 딸이다. 2남 1녀를 두었다. 10남 담양군(潭陽君) 거. 신빈 김씨가 낳았다. 일찍 죽었으니 시호는 이양(夷襄)이다.
1녀 정현옹주(貞顯翁主). 상침 송씨(尙寢宋氏)가 낳았다. 좌익공신 좌찬성 영천부원군(鈴川府院君) 충경공(忠景公) 윤사로(尹師路)의 아내이다. 2남을 두었다. 사로의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아버지는 참의 은(垠)이다. 2녀 정안옹주(貞安翁主). 숙원 이씨(淑媛李氏)가 낳았다. 청성위(靑城尉) 심안의(沈安義)의 아내이다. 1남 1녀를 두었다. 안의의 본관은 청송(靑松)이며, 아버지는 관찰사 선(璿)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