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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이씨] 정종(定宗)

작성일 : 2018-08-01 15:23

정종 공정 의문 장무 온인 순효대왕(定宗恭靖懿文莊武溫仁順孝大王)은, 휘는 경(?)이며, 자는 광원(光遠)이고, 처음 휘는 방과(芳果)이다. 태조의 둘째 아들로 신의왕후(神懿王后)가 지정 17년 공민왕 6년 7월 초하룻날 함흥(咸興) 귀주동(歸州洞) 사저(私邸)에서 낳았다. 고려조에 벼슬하여 장상(將相)까지 이르렀고, 태조가 즉위한 다음에 영안군(永安君)으로 봉하였다. 무인년 홍무 31년에 왕세자(王世子)로 책봉되었으며, 그 해 9월에 경복궁(景福宮) 근정전(勤政殿)에서 왕위를 물려받고, 경진년 건문(建文) 2년 11월에 태종에게 왕위를 전하였는데, 그 해 12월에 인문공예(仁文恭睿) 어첩(御牒)에 기록한 휘호에 겹친 글자가 있고 시호 가운데 온인(溫仁) 밑에 공용(恭勇) 두 자가 있으나, 공(恭) 자가 겹쳐 나오므로 어첩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다. 왕위에 있은 지 2년이고, 기해년 세종 원년 영락17년 9월 26일 무진에 인덕궁(仁德宮)에서 승하하였으니, 상왕위(上王位)에 있은 지 19년이며, 수(壽)는 63세였다.
숙종(肅宗) 7년 신유에 추후해서 묘호(廟號)를 정종(定宗)이라 하고 의문장무라고 시호를 더 올렸으며, 능은 후릉(厚陵)이다. 풍덕(豊德) 동편 흥교동(興敎洞)에 있다. 경자년(1420) 정월 초사흗날에 장사지냈는데, 표석(表石)이 있다.
비(妃) 순덕 온명 장의 정안왕후(順德溫明莊懿定安王后) 김씨(金氏)는, 본관은 경주이니, 판예빈시사(判禮賓寺事) 증 문화좌시중(贈門下左侍中) 천서(天瑞)의 딸이다. 을미년 지정 15년 정월 9일에 나서 무인년(1386)에 덕빈(德嬪)으로 책봉되었다가 얼마 안되어 정종이 왕위에 오르자, 덕비(德妃)로 올려서 봉하였다. 경진년(1400)에 존호를 순덕이라고 올리고, 임진년 태종 12년, 영락(永樂) 10년 6월 25일 무인에 인덕궁에서 승하하였는데, 수가 58세고 자녀는 없었다. 숙종 신유년(1681)에 추후하여 휘호를 온명장의(溫明莊懿)라 올렸다. 능은 후릉(厚陵). 대왕의 능과 같은 산에 있는데, 임진년(1412) 8월 8일에 장사지냈다.
아들 열 다섯과 딸 여덟을 두었다.
1남 의평군(義平君) 원생(元生). 지씨(池氏)가 낳았고, 시호는 민간(敏簡)이다. 철원최씨(鐵原崔氏)에게 장가들었으니, 금천 감무(衿川監務) 치숭(致崇)의 딸이다. 5남 3녀를 두었다. 2남 순평군(順平君) 군생(群生). 기씨(奇氏)가 낳았고,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순창설씨(淳昌薛氏)에게 장가들었으니, 판사재감사(判司宰監事) 설존(薛存)의 딸이다. 2남 2녀를 두었다. 3남 금평군(錦平君) 의생(義生). 기씨가 낳았고, 죽은 뒤에 금평군을 추증하였다. 남양홍씨(南陽洪氏)에게 장가들었으니, 사직 홍숙(洪宿)의 딸이다. 4남 선성군(宣城君) 무생(茂生). 지씨가 낳았고, 시호는 양정(良靖)이다. 연일정씨(延日鄭氏)에게 장가들었으니, 참의(參議) 종성(宗誠)의 딸이다. 딸 하나를 두었다. 안강김씨(安康金氏)를 재취하였으니, 상호군(上護軍) 중약(仲約)의 딸이다. 1남을 두었다.
5남 종의군(從義君) 귀생(貴生). 문씨(文氏)가 낳았고, 죽은 뒤에 종의군을 추증하였으며, 시호는 공안(恭安)이다. 양구유씨(楊口柳氏)에게 장가들었으니, 정(正)으로 찬성(贊成)을 추증한 수빈(守濱)의 딸이다. 해풍장씨(海豊張氏)에게 재취하였으니, 장균(張均)의 딸이다. 6남 진남군(鎭南君) 종생(終生). 이씨가 낳았고, 시호는 이간(夷簡)이다. 의령남씨(宜寧南氏)에게 장가들었으니, 상호군(上護軍) 남심(南深)의 딸이다. 7남 수도군(守道君) 덕생(德生). 윤씨(尹氏)가 낳았고, 죽은 뒤에 수도군을 추증하였으며, 시호는 희정(僖靖)이다. 여산송씨(礪山宋氏)에게 장가들었으니, 부사(府使) 계성(繼性)의 딸이다. 3남 1녀를 두었다. 8남 임언군(林堰君) 녹생(祿生). 윤씨가 낳았고, 죽은 뒤에 임언군을 추증하였으며, 시호는 혜안(惠安)이다. 고령박씨(高靈朴氏)에게 장가들었으니, 소윤(少尹) 박부(朴溥)의 딸이다. 1남 2녀를 두었다. 9남 석보군(石保君) 복생(福生). 윤씨가 낳았고, 죽은 뒤에 석보군을 추증하였으며, 시호는 정혜(靖惠)이다. 원주김씨(原州金氏)에게 장가들었으니, 판중추부사 대민공(戴敏公) 연지(連枝)의 딸이다. 3남 5녀를 두었다. 10남 덕천군(德川君) 후생(厚生). 지씨가 낳았고, 시호는 적덕(積德)이다. 장수 이씨(長水李氏)에게 장가들었으며, 장천부원군(長川府院君) 양후공(良厚公) 종무(從茂)의 딸이다. 4남 5녀를 두었다. 11남 임성군(任城君) 호생(好生). 지씨가 낳았고, 죽은 뒤에 임성군을 추증하였으며, 시호는 정혜(靖惠)이다. 평창이씨(平昌李氏)에게 장가들었으며, 군수(郡守) 계동(繼童)의 딸이다. 12남 도평군(桃平君) 말생(末生). 지씨가 낳았고, 시호는 공소(恭昭)이다. 용인이씨(龍仁李氏)에게 장가들었으며, 부사(府使) 수강(守綱)의 딸이다. 1남을 두었다. 전주최씨(全州崔氏)에게 재취하였으니, 사직(司直) 최수(崔洙)의 딸이다. 1녀를 두었다. 13남 장천군(長川君) 보생(普生). 윤씨가 낳았고, 죽은 뒤에 장천군을 추증하였으며, 시호는 공소(恭昭)이다. 화순최씨(和順崔氏)에게 장가들었으며, 군사(郡事) 자해(自海)의 딸이다. 4남 1녀를 두었다. 14남 정석군(貞石君) 융생(隆生). 기씨가 낳았고, 죽은 뒤에 정석군(貞石君)을 추증하였으며, 시호는 정희(靖僖)이다. 충주권씨(忠州權氏)에게 장가들었으니, 직장(直長) 권돈(權敦)의 딸이다. 15남 무림군(茂林君) 선생(善生). 기씨가 낳았고, 시호는 소이(昭夷)이다. 남양홍씨(南陽洪氏)에게 장가들었으니, 사정(司正) 흥선(興善)의 딸이다. 2남 4녀를 두었다.
1녀 함양옹주(咸陽翁主). 지씨가 낳았다. 남편은 지돈녕부사 박갱(朴?)인데, 아들 하나를 두었다. 박갱의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아버지는 소윤(少尹) 득중(得中)이다. 2녀 숙신옹주(淑愼翁主). 기씨가 낳았다. 남편은 판돈령부사 양평공(良平公) 김세민(金世民)인데, 아들 넷과 딸 넷을 두었다. 세민의 본관은 경주이고, 아버지는 도관찰사(都觀察使) 김겸(金謙)이다. 3녀 덕천옹주(德川翁主). 남편은 행부사(行府使) 변상복(邊尙服)인데, 3남 2녀를 두었다. 상복의 본관은 원주(原州)이고, 아버지는 도총제(都總制) 변이(邊?)이다. 4녀 고성옹주(高城翁主). 남편은 지중추부사 김한(金澣)인데, 3남 3녀를 두었다. 그 집 족보(族譜)에는 안성위(安城尉) 호평공(胡平公)이라 하였고, 본관은 안산(案山)이며, 아버지는 연성군(連城君) 위정공(威靖公) 정경(定卿)이다. 5녀 상원옹주(祥原翁主). 남편은 행사직(行司直) 조효산(趙孝山)인데, 1남 1녀를 두었다. 효산의 본관은 평양이고, 아버지는 의방(義方)이다. 6녀 전산옹주(全山翁主). 남편은 행사직 이희종(李希宗)인데, 3남 1녀를 두었다. 희종의 본관은 용인(龍仁)이다. 7녀 인천옹주(仁川翁主). 남편은 행부사(行府使) 이관식(李寬植)인데, 5남 3녀를 두었다. 관식의 본관은 전의(全義)이고, 아버지는 소윤(少尹) 성간(成幹)이다. 8녀 함안옹주(咸安翁主). 남편은 부지돈녕부사 월림군(月林君) 소정공(昭靖公) 이항신(李恒信)인데, 1남을 두었다. 항신의 본관은 경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