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左通禮公 克堅의 十三代孫) 자(字)는 맹기(孟棋), 호(號)는 만산(晩山), 현감공(縣監公) 인부(仁符)의 11대손(十一代孫)이며 유학자(儒學者)로서 기미삼일운동(己未三一運動) 당시 파리 만국평화회의(萬國平和會議)에 자주독립(自主獨立)을 호소(呼訴)하는 장서문(長書文)을 제출(提出)할 때 유림대표(儒林代表) 137人의 한 사람이다. 김창숙(金昌淑)ㆍ이중업(李中業)ㆍ곽대연(郭大淵)ㆍ김정호(金丁鎬)ㆍ한상도(韓相道) 등은 상의하여 유림단(儒林團)을 조직하고 가장 인망(人望)이 높은 사람이 주재(主宰)하여 총궐기(總厥起)할 것을 숙의(熟議)한 끝에 구한말(舊韓末) 의정참찬(議政參贊)을 지낸 곽종석(郭鍾錫)을 선두로 독립을 호소할 것을 결의하고 김창숙이 거창(居昌)으로 내려가 곽참찬을 만나 뜻을 전하니 곽참찬은 노부(老夫)가 사소(死所)를 얻었다며 쾌락(快諾)하므로 김창숙은 십여일 동안 각지를 순회하여 장서(長書)에 서명을 받아 상해(上海)로 가서 파리로 가려다가 가지 못하고 영문으로 번역하여 파리에 우편으로 발송하고 영ㆍ중ㆍ한문으로 번역, 오천 장을 인쇄하여 각국대표와 중국 각 언론기관과 국내 각 신문사에 배부하였다. 그 후 왜경(倭警)은 일삼칠인(一三七人)을 체포하여 대부분 대구 감옥에 수옥(收獄)시키고 김복한(金福漢)은 전주 감옥에 수감하였으며 노령으로 병세가 심한 사람과 같이 공(公)은 일찍 출옥(出獄)하였다. 광복(光復) 후 서울 장충단(奬忠壇) 공원(公園)에 파리장서기념비(巴里長書記念碑)가 세워졌으며 이 비(碑)에는 곽종석ㆍ김복한ㆍ이이익 등 일삼칠인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출전 : 삼ㆍ일독립운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