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8-01 10:46
1569(선조 2) ~ 1634(인조 12) 자(字)는 무백(茂伯), 호(號)는 석담(石潭), 고려의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 집(集)의 후손, 희복(熙福)의 아들. 정구(鄭逑)의 문인. 성주(星州) 출신. 1591년(선조 24) 진사(進士)가 되고, 1606년(선조 39)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전적(典籍)을 거쳐 광해군 즉위 초 주서(注書)를 지냈다.
1601년(광해군 2)에 검열(檢閱)로서 설서(設書)를 겸임, 이어 사관(史官)으로서 정인홍(鄭仁弘)의 비위사실을 직필(直筆)했다가 탄핵을 받아 사직했다. 그뒤 예문관의 대교(待敎)ㆍ봉교(奉敎)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다가 수성도찰방(輸城道察訪)을 거쳐 1613년 경성(鏡城) 판관(判官)을 역임, 대북(大北)의 전횡(專橫)이 심해지자 사직했다.
인조반정(仁祖反正) 뒤 이조정랑(吏曹正郞)에 이어 수찬(修撰)ㆍ교리(校理)ㆍ응교(應敎)ㆍ사간(司諫)ㆍ사성(司成)을 거쳐 이조참의(吏曹參議)에 이르렀다.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추증(追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