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8-01 10:45
1560(명종 15) ~ 1623(인조 1) 자(字)는 득여(得輿), 호(號)는 관송(觀松)ㆍ쌍리(雙里), 좌찬성(左贊成) 극돈(克墩)의 후손, 우선(友善)의 아들. 1582년(선조 15)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1593년 광릉참봉(光陵參奉)을 지내고, 이듬해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전적(典籍)에 올라 사가독서(賜暇讀書)했다.
1599년 이조정랑(吏曹正郞)이 되고, 1608년 문과중시(文科重試)에 장원(壯元)했다. 이때 선조의 후사문제(後嗣問題)로 대북(大北)ㆍ소북(小北)이 대립하자 대북의 영수로서 광해군(光海君)의 옹립을 주장하고 정인홍(鄭仁弘)과 모의, 영창대군(永昌大君)을 받드는 류영경(柳永慶) 등 소북을 논박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서 갑산(甲山)에 유배당하게 되었으나, 이해 선조가 급사하고 광해군이 즉위하자 일약 예조판서에 올라 대제학을 겸임, 광창부원군(廣昌府院君)에 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