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8-01 10:34
1498(연산군 4) ~ 1562(명종 17) 자(字)는 중길(重吉), 호(號)는 숭덕재(崇德齋), 시호(諡號)는 정헌(正獻), 수찬(修撰) 수정(守貞)의 아들.
1504년 아버지가 갑자사화(甲子士禍)에 연루되자 전 가족이 원지(遠地)에 유배, 중종반정(中宗反正) 후 서울에 올라와 1531년(중종 26) 진사(進士)가 되고, 1534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예문관(藝文館)에 등용된 후 저작(著作)ㆍ수찬(修撰)ㆍ교리(校理)를 거쳐 사간(司諫)이 되었다.
이어 의주부윤(義州府尹)을 거쳐, 1545년 (명종 즉위) 대사간이 되어 현량과(賢良科)의 복설(復說)을 청했고, 대윤(大尹)을 제거하는 데 가담하여 위사공신(衛社功臣) 3등에 책록되었다. 이듬해 성주목사(星州牧使)가 되었으나, 아들 중열(中悅)이 대윤 윤임(尹任)의 일파로 몰려 사사(賜死)되자 관작(官爵)이삭탈(削奪)되었다가 1550년 용서되어 승지(承旨)를 지내고, 이해 구수담(具壽聃)의 일파라는 무고로 문외출송(門外出送)되었다.
1553년 등용되어 형조참의(刑曹參議)에 보직, 이듬해 전주부윤(全州府尹)이 되고, 1555년 을묘왜변(乙卯倭變)이 일어나자 관찰사의 명으로 영암(靈巖)의 수성장(守城將)이 되어 왜구(倭寇)의 침입을 방어한 공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오르고 전라도 관찰사에 승진했다. 그 후 도승지(都承旨)ㆍ병조판서를 지내고, 평안도 관찰사로 재임 중 병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