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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이씨] 이약빙(李若氷)

작성일 : 2018-08-01 10:33

1489(성종 20) ~ 1547(명종 2) ()는 희초(熹初), ()는 준암(樽巖), ()의 아들. 성균관 유생으로 1508(중종 3) 왕이 성균관을 찾아 시험할 때 수석으로 뽑혀 「예기(禮記)」를 하사받았고, 1513(중종 8) 수석으로 생원(生員)이 되어 이듬해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여러 관직을 거쳐 1518(중종 18) 공조정랑(工曹正郞)에 올라 사가독서(賜暇讀書)했다.

이듬해 기묘사화(己卯士禍)에 희생된 조광조(趙光祖)와 형 약수(若水)의 사면을 주청하다 삭직(削職)되고, 1537년 다시 기용되어 예조정랑을 거쳐 한산군수(韓山郡守)로 보직, 1539년 노산군(魯山君:단종)과 연산군(燕山君)의 후사(後嗣)를 세울 것과 복성군(福成君)의 신원(伸寃)을 상소했다가 또 파직되었다.

1543(중종 38) 경기도에 재상어사(災傷御史)로 파견되고, 이듬해 수원부사(水原府使)ㆍ종부시정(宗簿寺正) 등을 거쳐 1547(명종 2) 좌통례(左通禮)로 재직 중 소윤(小尹)인 윤원형(尹元蘅)ㆍ이기(李芑) 등이 양재역(良才驛)의 벽서(壁書) 사건을 일으켜 대윤(大尹)을 제거할 때 윤임(尹任)의 인척이라 하여 사형되고 가산이 적몰(籍沒)되었다. 선조 때 신원(伸寃)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