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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이씨] 이극배(李克培)

작성일 : 2018-08-01 10:20

1422(세종 4) ~ 1495(연산군 1) ()는 겸보(謙甫), ()는 우봉(牛峰)ㆍ매월당(梅月堂), 시호(諡號)는 익평(翼平), 우의정 인손(仁孫)의 아들. 1477(세종 29) 생원시(生員試)에 합격, 이 해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 승문원(承文院) 부정자(副正字)가 되고, 감찰(監察)ㆍ정언(正言)ㆍ병조좌랑(兵曹佐郞)ㆍ병조정랑(兵曹正郞) 등을 역임하였다.

수양대군(首陽大君)의 총애를 받다가 1455년 그가 즉위하자 좌익공신(佐翼功臣) 3등으로 광릉군(廣陵君)에 봉해졌고, 1457(세조 3) 예조참의(禮曹參議)에 올라 세조가 영남지방을 순행(巡幸)하게 되자 특히 경상도 관찰사가 되었다.

병조와 예조의 참판(參判) 겸 집현전제학(集賢殿提學)을 거쳐, 1459년 북변의 야인(野人)을 정벌할 때 신숙주(申叔舟)와 함께 출전하였고, 돌아와 경기도 관찰사가 되었다. 1462(세조 8) 이조판서에 승진했고, 형조와 예조의 판서, 평안도 병마절도사, 이어 병조판서, 평안도 관찰사를 역임했다.

예종 때 우참찬(右參贊)이 되고 1471(성종2) 좌리공신(佐理功臣) 3등에 좌참찬(左參贊)이 되었고,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77년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로서 삼도순찰사(三道巡察使)를 겸하고 1479년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에 승진, 1481년과 1482년의 대기근(大饑饉)을 구제하고 겸판호조사(兼判戶曹事)가 되었다. 1485(성종 16) 우의정으로 병조판서를 겸하고 1493년 영의정에 올라 광릉부원군(廣陵府院君)에 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