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8-01 10:11
1327년(충숙왕 14) ~ 1387(우왕 13) 초명은 원령(元齡),자는 호연(浩然),호는 둔촌(遁村), 생원(生員) 당(唐)의 아들ㆍ1347년(충목왕 3)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정몽주(鄭夢周)ㆍ이색(李穡)ㆍ이숭인(李崇仁) 등과 교유했다.
1368년(공민왕 17) 신돈(辛旽)의 미움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자 영천(永川)으로 피신, 1371년 신돈이 주살(誅殺)되자 송경(松京)에 돌아와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에 임명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여주(驪州) 천녕현(川寧縣)에서 독서(讀書)로 세월을 보내며「시편신립(詩篇新粒)」에 대한 질문서를 정몽주에게 보내 문사들을 경탄케 했다. 서울시 강동구의 구암서원(龜巖書院)에 배향(配享)되었다. 광주이씨대종회(廣州李氏大宗會)의 1대(一代)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