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3-1566. 자는 여임(汝任)이고 호는 금시당(今是堂)이며 진사 원(遠)의 차자이다. 1540년에 생원시에 합격한 후 그 6년 뒤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승문원 정자(正字)로 출사한 후 곧 한림(翰林)으로 발탁되어『중종실록(中宗實錄)』과『인종실록(仁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어 홍문관 부교리(副校理)와 각조(各曹)의 좌랑(佐郞)· 정랑(正郞)을 거쳐, 노모(老母)의 봉양을 위해 순천(順天)· 흥양(興陽)· 사천(泗川)· 창녕(昌寧) 등지의 목민관이 되어 치적(治績)을 거두었다. 1562년에 임금의 부름을 받아 다시 내직으로 들어가 삼사(三司)의 요직을 두루 거친 후, 1564년에는 43인 사유(師儒)의 수반(首班)으로 뽑혔으며 마침내 승정원의 승지(承旨)가 되어 오랫동안 왕명을 출납하였다. 사관(史官)들이 사초(史草)에서 평하기를 ‘맑고 단아하며 매사에 신중하고 과묵하여 사람들이 모두 그를 취하였다(淸雅愼黙 人皆取焉)’이라 하였다. 저서에『금시당집(今是堂集)』1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