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0-1539. 자는 희은(希殷)이고 진사(進士) 원(遠)의 큰아들이다. 22세 때 생원·진사 양시(兩試)에 동시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수학하던 중, 중종(中宗)의 문묘 알성시(謁聖試)가 있어 문과회시(文科會試)에 직부(直赴)하는 은전을 입었다. 그러나 그 식년(式年)의 방(榜)을 보지 못한 채 나이 30세로 요절(夭折)하니, 사람들은 안회(顔回)와 백어(伯魚)의 죽음에 비유하여 슬퍼하였다. 친우(親友)인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는 그에게 보낸 시에서 “그 기상과 인품이 세속을 벗어났다”하였고 특히 그 글씨를 종요(鍾繇)와 왕희지(王羲之)의 필법에 견주어 칭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