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9-1525. 자는 고운(孤雲)이고 호는 알 수 없으며 충순위(忠順衛) 사필(師弼)의 큰 아들이다. 1501년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한 후 성균관에서 문과에 대비했으나 연산군(燕山君)의 혼정(昏政) 때문에 드디어 과업(科業)을 포기하였다. 만년에는 향리 사인당리(舍人堂里)에서 강학(講學)의 장소를 마련한 후 후진들을 가르치는 한편, 향중선비들과 어울려 학문을 토론하고 향속(鄕俗)을 순화시키는데 앞장을 섰다. 밀양의 향선생(鄕先生) 24현(賢)의 한분으로 추앙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