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7-26 14:21
1839(헌종 5)~1884(고종 21) 자(字)는 치명(稚命), 호(號)는 석정(石渟), 시호(諡號)는 충정(忠貞), 판서 교성(敎成)의 아들. 1873년(고종 10) 진사시(進士試)에 합격, 음보(蔭補)로 세자익위사 세마(世子翊衛司洗馬)가 되고, 1881년 수신사(修信使)의 종사관(從事官)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이어 영선사(領選使)의 종사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온 후 1882년(고종 19)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 사어(司禦)․직각(直閣) 등을 역임, 이해 임오군란(壬午軍亂)이 일어나자 민비(閔妃)를 보호하여 여주(驪州)를 거쳐 충주(忠州)에 피난했다. 군란이 진압된 뒤 돌아와서 구식군대를 폐지하고 청나라 식으로 개편하게 되자 친군영(親軍營)의 감독(監督)이 되고 이듬해 참의군국사무(參議軍國事務)․기기국 총판(機器局總辦)을 지냈다.
1884년 협판군국사무(協辦軍國事務)․협판교섭통상사무(協辦交涉通商事務) 등을 역임. 이해 갑신정변(甲申政變)이 일어나자 후영사(後營使)로 사대당(事大黨)들을 보호하다가 독립당(獨立黨) 장사패들에게 살해되었다. 영의정(領議政)에 추증(追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