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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평윤씨] 윤양래(尹陽來)

작성일 : 2018-07-26 13:58

1673(현종 14)~1751(영조 27) 자(字)는 계형(季亨), 호(號)는 회와(晦窩), 시호(諡號)는 익헌(翼獻), 부윤(府尹) 이(理)의 아들. 1699년(숙종 25) 진사(進士)가 되고, 1708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주서(注書)에 초임(初任)되어 글씨를 빨리 써서 비주서(飛注書)라는 별명을 들었다.

이어 지평(持平)․사서(司書)․정언(正言) 등을 역임, 1716년 문학(文學)․필선(弼善)․헌납(獻納)․사간(司諫), 이듬해 집의(執義)로 경상우도 암행어사(慶尙右道暗行御史)로 나갔고, 보덕(輔德)을 지냈다.

1720 승지(承旨)․병조 참의(兵曹參議)․우부승지(右副承旨)를 거쳐 1721(경종 1) 충청도 관찰사(忠淸道觀察使)로 재직중에 죄인 박세명(朴世明)을 즉시 도성(都城)에 효수(梟首)하지 않았다는 죄로 체포되어 국문(鞫問)을 받았으나 곧 석방되어 동지 겸 주청 부사(冬至 兼奏請副使)로 청나라에 갔다. 이듬해 귀국했으나 당시 집권층이던 소론(少論)측으로부터 청나라에가서 경종의 질병을 함부로 발설했다는 죄목으로 파직, 갑산(甲山)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

1725(영조 1) 노론(老論)의 재집권으로 풀려 나와 승지로 기용, 이어 공조 참판(工曹參判)을 거쳐 대사간(大司諫)으로 재직중 탕평책(蕩平策)을 건의하여 왕의 신임을 받았으나 윤심형(尹心衡)의 논척(論斥)을 받고 영월 부사(寧越府使)로 좌천당했다가 곧 병조 참판(兵曹參判)이 되었다.

이어서 안동부사(安東府使)를 거쳐 1729년 예조와 병조의 참판(參判),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 등을 역임, 다음해 함경도 관찰사, 1723년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이어 도승지(都承旨)․평안도 관찰사(平安道觀察使)․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을 거쳐 형조․공조․호조의 판서, 대사헌(大司憲), 1738년 좌참찬(左參贊) 등을 지내고 1743년 판돈령부사(判敦寧府事)가 되었다.

1746년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로 신임사화(辛壬士禍) 당시의 소론을 통박하는 연소문(聯疎文)을 올려 한때 삭직(削職)되었다가 판돈령부사에 이어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글씨와 시문(時文)에 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