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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평윤씨] 윤봉조(尹鳳朝)

작성일 : 2018-07-26 13:53

1680(숙종 6)~1761(영조 37) 자(字)는 명숙(鳴叔), 호(號)는 포암(圃巖), 명원(明遠)의 아들. 1699년(숙종 25)에 생원(生員)이 되고 1705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 (丙科)로 급제, 지평(持平)․사서(司書)․정언(正言)․부수찬(副修撰) 등을 역임, 1713 암행어사(暗行御史)가 되었다. 이어 이조 좌랑(吏曹 佐郞)․부교리(副校理)․사인(舍人)․응교(應敎) 등을 지내고 승지(承旨)를 거쳐 1719년 대사간(大司諫)에 승진, 이어 우승지(右承旨)에 전직했다가 경종(景宗)이 즉위하면서 소론(少論)이 집권하자 사직, 은퇴했다.

1725(영조 1) 승지(承旨)에 재등용, 이조참의(吏曹參議)가 되고 부제학(副提學)으로 실록도청 당상(實錄都廳堂上)을 겸하여,「경종실록(景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했다. 이듬해 예조 참판(禮曹參判)이 되었으나 1727년 정미환국(丁未換局)으로 노론(老論)이 숙청당할 때 앞서 1725년 방만규(方萬規)가 탕평(蕩平)을 배척하는 상소문(上疎文)을 올린 일에 관련되어 파직당하고 삭주(朔州)에 유배, 이어 정의(旌義)에 안치(安置)되었다.

1735년 전리(田理)에 방귀(放歸)되었다가 1741년 관직이 복구되어 공조 참판으로 등용, 1743년 부제학이 되고 이어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로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으며, 1757년 우빈객(右賓客)․판돈령부사(判敦寧府事), 다음해 대제학(大提學)이 되었다. 문장에 능하여 특히 소차(疎箚)는 명문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