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7-26 13:49
1661(현종 2)~1729(영조 5) 자(字)는 길보(吉甫), 호(號)는 이지당(二知堂), 시호(諡號)는 익헌(翼獻),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택(澤) 아들. 1684년(숙종 10)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음보(蔭補)로 참봉(參奉)․봉사(奉事) 등을 지내고, 1698년(숙종 24) 알성문과(謁聖文科)에 장원, 전적(典籍)을 거쳐 이듬해 정언(正言)이 되고 이어 장령(掌令)․사서(司書)․필선(弼善)․헌납(獻納) 등을 역임, 1705년 사간(司諫)에서 승지(承旨)로 승진했다.
1716년(숙종 42) 성주 목사(星州牧使)로서 크게 치적을 올려 동지 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가 되었으며, 1722년(경종 2) 함경도 관찰사(咸鏡道觀察使)․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 등을 지냈다.
이듬해 함경도 관찰사로 다시 부임하여 오직사건(汚職事件)으로 용천(龍川)에 유배(流配)되었으나 1724년 영조(英祖)가 즉위하자 풀려서 다시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으로 복직, 평안도 관찰사를 거쳐 형조․호조의 판서를 지낸 뒤 은퇴했다.
1728년 이인좌(李麟佐)․박필현(朴弼顯)등이 반란을 일으키자 북도 안무사(按撫使)로 기용되었다 분무원종공신(奮武原從功臣)에 추록(追錄), 좌찬성(左贊成)에 추증(追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