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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평윤씨] 윤지완(尹趾完)

작성일 : 2018-07-26 13:43

1635(인조 13)~1718(숙종 44) 자(字)는 숙린(叔麟), 호(號)는 동산(東山), 시호(諡號)는 충정(忠正), 판서 강(絳)의 아들, 좌의정 지선(趾善)의 아우. 1657년(효종 8)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1662년(현종 3) 증광문과(增廣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설서(說書)․헌납(獻納)․부수찬(副修撰) 등을 지냈다.

1675(숙종 1) 지평(持平)으로 시독관(侍讀官)을 겸직하고 경연(經筵)에 나가 당쟁의 폐해와 송시열(宋時烈)의 신구(伸救)를 건의했다가 다시 집권당인 남인(南人)의 탄핵을 받아 삭직(削職)당했다. 1680(숙종 6)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서인(西人)이 집권하자 부교리(副校理)에 등용되었고, 부응교(副應敎)를 거쳐 경상도․함경도의 관찰사(觀察使) 등을 지냈다.

1682년 통신사(通信使)로 일본에 갔다가 이듬해 돌아와 어영대장(御營大將)․예조 판서(禮曹判書) 등을 역임, 1684년 경상도 관찰사에 재임되고 1688년 병조 판서, 다음해 평안도 관찰사(平安道觀察使)가 되었다.

이해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서인이 실각하자 파직, 유배되었다가 1694년 갑술옥사(甲戌獄事)로 서인이 집권할 때 복직되어 좌참찬(左參贊)․우의정(右議政)을 지냈다.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된 뒤 이듬해 영돈령부사(領敦寧府事)에서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갔으며, 1703년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가 되었다. 숙종(肅宗)의 묘정(廟廷)에 배향(配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