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7-26 13:33
1606(선조 39)~1672(현종 13) 자(字)는 여망(汝望), 호(號)는 석호(石湖), 시호(諡號)는 충경(忠敬), 대사간 황(煌)의 아들. 선거(宣擧)의 형. 김 집(金 集)의 문인. 1630년(인조 8)에 생원(生員)이 되고, 1633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검열(檢閱)을 거쳐 이어 설서(設書), 여러 조(曹)의 낭관(郎官), 정언(正言)․부수찬(副修撰)․부교리(副校理) 등을 지내고,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丙子胡亂)에 아버지를 따라 왕을 남한산성(南漢山城)에 호종(扈從), 1639년 부친상을 당해 집상한 후 제천 현감(堤川縣監)이 되었으나 곧 사퇴, 효종(孝宗) 즉위 후 여러번 승지(承旨)로 불렸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1652년(효종 3) 동래 부사(東萊府使)가 되었다가 왜관(倭館)에서의 교역(交易)을 철저히 단속하지 않았다는 죄로 파직, 그뒤 승지(承旨), 이조․호조․형조의 참의(參議), 부제학(副提學)․대사간(大司諫)․대사성(大司成)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했다.
만년에는 주자(朱子) 연구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글씨에도 능했다. 좌찬성(左贊成)에 추증(追贈), 연산(連山)의 귀산서원(龜山書院), 노성(魯城)의 노강서원(魯岡書院), 석성(石城)의 봉호서원(蓬湖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