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7-26 13:14
1584(선조 17)~1634(인조 12) 자(字)는 유일(幼一), 호(號)는 창주(滄洲), 좌의정 개(漑)의 증손, 도승지(都承旨) 담무(覃茂)의 아들. 1603년(선조 36)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1609년(광해군 1)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1615년 서원 현감(西原縣監)이 되고, 1617년에 병조의 좌랑(佐郞)과 정랑(正郞)을 역임한 후 이해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619년 겸필선(兼弼善)․교리(校理), 이듬해 수찬(修撰)․보덕(輔德), 이어 검상(檢詳)․사인(舍人)을 지내고, 1623년 겸보덕(兼輔德)으로 인조반정(仁祖反正) 때 궁궐에 입직(入直) 중 반정군의 신경유(申景裕)에게 잡혀 참수될 뻔했으나 인조의 만류로 살아 전한(典翰)이 되었다.
이어 응교(應敎)․집의(執義)․사간(司諫)을 거쳐 1627년(인조 5) 정묘호란(丁卯胡亂)이 일어나자 독전어사(督戰御史)로 나가 임진강(臨津江)에서 군사를 독려했고, 검독어사(檢督御史)로 군량미 조달에 힘써 그 공으로 표리(表裏)를 하사받았다. 이해 동부승지(同副承旨)로 참찬관(參贊官)을 겸임, 우부승지(右副承旨)․예조 참의(禮曹參議)를 거쳐 1632년 공충도 관찰사(公忠道觀察使)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