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7-26 13:12
1575(선조 8)~1636(인조 14) 초명은 찬(燦), 자(字)는 회숙(晦叔), 호(號)는 후촌(後村), 시호(諡號)는 충헌(忠憲), 창세(昌世)의 아들, 부윤(府尹) 황(煌)의 아우, 성혼(成 渾)의 문인. 1610년(광해군 2)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저작(著作)이 되었다.
1613년 유생 이위경(李偉卿) 등이 이이첨(李爾瞻)의 사주로 폐모(廢母)를 상소하자 이들의 처벌을 주장하다가 파직당했다. 이듬해에 박사(博士)에 기용, 전적(典籍)․감찰(監察)을 거쳐 1615년 호조 좌랑(戶曹佐郞)으로 대북파(大北派)의 탄핵을 받아 파직당했다가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경기도 도사(京畿道都事)에 복직되었다.
이듬해 이 괄(李 适)의 난이 일어나자 왕을 공주(公州)에 호종(扈從)한 뒤 공조 정랑(工曹正郞)이 되고, 환도 후 지평(持平)을 거쳐 1627년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호소사(號召使) 김장생(金長生)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었다가 강화(江華)에 들어가 분병조정랑(分兵曹正郞)․공조 정랑․사예(司藝)․예빈 시정(禮賓寺正) 등을 역임, 익산 군수(益山郡守)가 되었다. 1633년 종묘서령(宗廟署令)․직강(直講)․장령(掌令)을 지내고, 1636년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필선(弼善)으로 강화도에 들어가서 적과 싸우다가 전사했다.
이조 판서(吏曹判書)에 추증(追贈), 강화의 충렬사(忠烈祠), 연산(連山)의 귀산서원(龜山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