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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평윤씨] 윤황(尹 煌)

작성일 : 2018-07-26 13:11

1572(선조 5)~1639(인조 17) 자(字)는 덕요(德耀), 호(號)는 팔송(八松)․노곡(魯谷), 시호(諡號)는 문정(文正), 창세(昌世)의 아들. 장인 성 혼(成 渾)의 문인. 1597년(선조 30) 알성문과(謁聖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정자(正字)에 보직되고 1601년 전적(典籍)에 올랐다.

감찰(監察)․정언(正言)에 이어 병조․예조․형조의 좌랑(佐郞)을 거쳐 수원(水原)․북청(北靑)의 판관(判官)과 영광 군수(靈光郡守)를 지내고 봉상시정(奉常寺正)에 이어 군기감정(軍器監正)에 전임, 1616(광해군 8) 대북(大北)의 탄핵으로 벼슬에서 물러나 이산(尼山)에 은거했다.

인조반정(仁祖反正 : 1623) 후 장령(掌令)․집의(執義)․대사간․검상(檢詳)․사인(舍人)․동부승지(同副承旨)․이조 참의(吏曹參議)․전주 부윤(全州府尹) 등을 역임, 1624년 부응교(副應敎)로서 이 괄(李适)의 난 때 검찰사(檢察使)사였던 이 귀(李 貴)가 임진강(臨津江) 싸 움에서 패한 죄를 탄핵했다.

정묘호란(丁卯胡亂 : 1627)과 병자호란(丙子胡亂 : 1636) 때 사간(司諫)으로서 척화(斥和)를 극력 주장, 1637년 김상헌(金尙憲)․정 온(鄭 蘊)이 척화신(斥和臣)으로 청나라 군영에 붙잡혀 가게 되자 대신 붙잡혀 갈 것을 자청했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영의정(領議政)에 추증(追贈), 노성(魯城)의 노강서원(魯岡書院), 영동(永同)의 초강서원(草江書院), 영광(靈光)의 용계사(龍溪祠)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