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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평윤씨] 윤경(尹 絅)

작성일 : 2018-07-26 13:08

1567(명종 22)~1664(현종 5) 자(字)는 미중(美仲), 호(號)는 기천(岐川), 시호(諡號)는 정희(靖僖), 충좌위 상호군(忠佐衛上護軍) 대로(大老)의 아들. 1589년(선조 22) 진사시(進士試)에 합격, 1600년 주서(注書), 이어 예조 좌랑(禮曹佐郞)․지평(持平)․공조 정랑(工曹正郞)을 거쳐 1605년 평양부서윤 (平壤府庶尹), 1610년(광해군 2) 죽주 부사(竹州府使), 이어 분승지(分承旨)․분병조참의(分兵曹參議)를 역임했다.

1613년 이이첨(李爾瞻)의 폐모론(廢母論)을 반대하여 파직, 양근(楊根)에 은거하다가 1621년 접반사(接伴使)로서 명나라 유격장(遊擊將) 모문룡(毛文龍)을 맞으러 가도(椵島)에 갔다.

1623(인조 1) 해주 목사(海州牧使)가 되었고, 이듬해 이 괄(李 适)의 난 평정에 종군, 1627년 정묘호란(丁卯胡亂)에 세자(世子)를 시종하여 완산(完山)으로 피난했고, 1636년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판결사(判決事)로 인조를 모시고 남한산성(南漢山城)에 들어갔다.

이듬해 병조 참의(兵曹參議)․도총부 도총관(都摠府都摠管), 1645년 공조 참판(工曹參判) 등을 역임,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가 되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으며, 1656(효종 7) 90세가 되어 숭정대부(崇政大夫)에 올라 공조 판서(工曹判書)가 되고, 1660(현종 1) 판돈령부사(判敦寧府事)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