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7-26 13:06
1562(명종 17)~1628(인조 6) 자(字)는 익세(翼世), 호(號)는 태비(苔扉), 이조 좌랑(吏曹佐郞) 엄(儼)의 아들. 이 이(李 珥)․성 혼(成 渾)의 문인. 1588년(선조 21)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선공감 감역(繕工監監役)에 임명되었으나 사퇴, 1609년(광해군 1)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승문원(承文院)에 보직되고, 형조 좌랑(刑曹佐郞)․전라도 도사(全羅道都事)․형조 정랑(刑曹正郞)을 역임하다가 광해군의 난정(亂政)이 거듭되자 외직(外職)을 자청, 괴산 군수(槐山郡守)로 나갔다가 이어 파직되었다.
1617년 장악원 첨정(掌樂院僉正)으로 기용, 이해 사성(司成)에 올랐으나 모함을 받아 대동도 찰방(大同道察訪)에 좌천, 얼마후 파직당했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군자감정(軍資監正)에 기용, 이어 장령(掌令)․내섬시정(內贍寺正)을 역임, 1624년 이 괄(李 适)의 난 때 공주(公州)로 왕을 호종(扈從),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거쳐 공조 참의(工曹參議)에 올라 병으로 사직하였다. 경사(經史)에 밝고 시문(詩文)에 능했으며 특히 조맹부(趙孟頫)를 사숙(私淑), 해서(楷書)를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