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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평윤씨] 윤안성(尹安性)

작성일 : 2018-07-26 12:57

1542(중종 37)~1615(광해군 7) 자(字)는 계초(季初), 호(號)는 의관(宜觀), 참판(參判) 부(釜)의 아들. 1583년(선조 16) 복병장(伏兵將)으로 야인(野人)의 침입을 격퇴하였고, 1589년 윤탁연(尹卓然)의 천거로 요직에 등용, 1592년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김명원(金命元)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왜적과 싸웠다.

안동 판관(安東判官)을 거쳐 숙천 부사(肅川府使)를 지내고 이듬해 전주 부사(全州府使)로 전직되어 금산(錦山)에 쳐들어온 왜군(倭軍)을 막지 못한 데다 전주의 관고(官庫)를 소각하여 많은 미곡을 소실 했다는 죄로 파직당했다.

이어 충주 목사(忠州牧使)로 등용되고 온성(穩城)과 회령(會寧)의 부사를 역임하는 동안 선정을 베풀어 1597년 함경도 순무어사(咸鏡道巡撫御吏) 류몽인(柳夢寅)의 천거로 표리(表裏)를 하사받았다.

1599년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동부승지(同副承旨)가 되고, 1601년 우승지(右承旨)․경주 부윤(慶州府尹), 이듬해 함경북도 병마절도사(咸鏡北道兵馬節度使), 1603년 해주 목사(海州牧使)등을 거쳐 1608(선조 41) 전라도관찰사(全羅道觀察使), 1610년 형조 참판(形曹參判)에 이어 1612년 양양 부사(襄陽府使)에 재직중 김직재(金直哉)의 무옥(誣獄)에 관련되어 파직당했다가 1615년 능창군(綾昌君) ()의 추대사건에 관련된 혐의로 사형에 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