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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평윤씨] 윤언이(尹彦頣)

작성일 : 2018-07-26 10:41

?~1149(의종 3) 호(號)는 금강거사(金剛居士), 시호(諡號)는 문강(文康), 시중(侍中) 관(瓘)의 아들. 문과(文科)에 급제, 인종(仁宗) 때 기거랑(起居郞)이 되어 좌사간(左司諫) 정지상(鄭知常), 우정언(右正言) 권 적(權 適) 등과 함께 정치의 득실을 논하여 왕으로 하여금 실시케 했다.

1128(인종 6) 예부시랑(禮部侍郞)으로서 송나라에 파견되어 국교 재개를 청하고 돌아왔으며, 1132년에 국자 사업(國子司業)으로서 경연(經筵)에서 경의(經義)를 강의하고 화서대(花犀帶)를 하사받았다.

일찍이 예종 때 아버지 관()이 왕명을 받아 지은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의 비문(碑文)을 김부식(金富軾)이 함부로 고친 일이 있어, 아버지를 모욕한 김부식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차에 1133(인종 11) 김부식의 주역(周易) 강의를 문난(問難)하라는 왕명을 받고 정연한 논리로 반박하여 아버지를 위해 설분했다.

1135(인종 13) 묘청(妙淸)의 난에 원수(元帥) 김부식의 막료로 출전하여 이듬해 서경(西京)의 함락 때 공을 세웠으나 도리어 정지상과 내통했다는 김부식의 보고에 의해 양주 방어사(梁州防禦使)로 쫓겨났다.

뒤에 광주 목사(廣州牧使)가 되자 지난날 억울했던 사실을 왕에게 해명했으며, 1147(의종 1) 정당문학(政堂文學)이 되었다. 예종(睿宗)․인종(仁宗)․양조(兩朝)에 걸쳐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고, 특히「주역(周易)」에 밝았으며, 만년에는 불교를 깊이 믿어 중 관승(貫乘)과 친교를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