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7-24 11:32
1912년~1940년 함남(咸南) 북청군(北靑郡)에서 출생하였고 서울 경신고보(儆新高普) 2학년 때 광주 학생사건(1929년 11월 3일)이 일어나자 반일(反日) 투쟁과 만세운동을 주동하여 퇴학을당하였으며, 동경(東京)으로 도피하여 나가노 중학(中學)에 편입하였으나 일본학생 구절사건(日本學生 歐切事件)으로 1931년 4학년 때 퇴학을 당했다.
1931년 일본 탄압정치에 한(恨)을 품고 중국에 망명하여 상해 남화한인청년연맹(上海南華韓人聯盟)에 가입하였고 1933년 중국 중앙군관학교(中國中央軍官學校)에 입학하여 졸업 후 동교 교롼(同校敎官)에 임명되었으며, 1937년 중․일전쟁(中․日戰爭)이 일어나자 출전(出戰)하여 수많은 일본군을 무찔렀으나 대대장(大隊長) 당시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일본 제국(日本帝國)에 항거하였다는 죄로, 1940년 2월 2일 29세의 나이로 형장(刑場)의 이슬로 사라졌다. 일본군은 판결문과 유골함(遺骨函) 및 유품을 보내와 하차서면(下車書面) 임자동리(荏子洞里) 직동(直洞) 사미혈(蛇尾穴)에 안장(安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