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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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7-12-28 21:34 수정일 : 2018-01-04 15:27

포산(현풍)곽씨의 연원

성씨의 연원란 그 성씨의 시조 또는 기조의 기원을 말하는 것으로 몇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신화와 전설에 의한 시조의 출현

둘째는 부족사회시대에 부족장을 시조로 하는 성씨

셋째는 중국에서 한반도로 귀화한 사람을 시조로 하는 경우

넷째는 봉건왕조시대에 국왕으로부터 사성 받은 사람을 시조로 하는 성씨 등이 있다.


첫째의 경우는 시조가 그 성씨의 기원이 되겠으나 그 외에는 그 성씨의 상계를 찾아보아야 그 기원을 알 수 있다.

오곽은 고려 인종 11년(1133) 중국 관서의 홍농인으로 고려에 와서 벼슬을 하신 포산군 휘 경을 시조로 하고 있으므로 경조의 상계 및 기원을 종 한 것이 포산곽씨의 연원이라 하겠다.

중국 상고사에 많은 이설이 있으나 사마천의 사기에 의하면 기원전 2300년 한 민족의 국조 황제헌원 시절 황제의 현손인 기는 농경방법을 처음 개발한 분으로 초대 후작을 역임하였고, 요제가 농사로 임명하였으며, 순제는 태에 봉하고 후작으로 임명하였다. 이 분의 셋째 아들 왕계에게 세 아들이 있었다. 맏이는 문왕이고, 둘째는 괵중, 셋째는 괵숙이다.

괵중과 괵숙은 경사라는 직무를 맡아 형 문왕을 도와 정무를 잘 본 공으로 괵중은 서괵국주로, 동생 괵숙은 동괵국주로 각각 봉하고 괵숙에게 곽씨라 사성하시니 이것이 곽씨성의 출현이다.

괵이란 나라를 중국지명대사전에서 찾아보면 지금의 하남성 영보현의 남쪽 40리에 있다 하였으니 실존(實存)했던 나라임을 알 수 있고 사성 당시에는 괵자와 곽자(郭字)를 오늘날 치와 치, 창과 창처럼 혼용해 동일시 했으며 희씨(姬氏)와 곽씨(郭氏)도 동성시 했다고 전한다.

이를 증명하듯 당나라 정관년간(서기 600년경)의 명필 구양순의 유명한 사대비문 중 하나인 화도사비문에 선사 속성곽씨 태원개휴인 석유주씨 적덕누공 경류장세 분성판야 대계번유 채백계운 괵자곽야 괵숙내문 왕소자 곽태즉이라 하였고, 1579년판 명나라 능적지편의 고금만성통보에 주문왕 계제괵숙 수봉어괵 호왈곽씨 인이위씨 라고 하였다.

이것이 지금으로부터 3.000여년 전의 일인데 중국이 주(周), 한(漢), 진(晋), 당(唐). 송(宋)으로 이어지는 약2.300여년에 걸쳐 중국의 명문으로 발전하여 춘추시대 연나라의 현인 곽외, 진대 대학자 곽박. 당대의 명장 곽자의, 송대의 명화가 곽희 , 도학자 곽유도 외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송 고종 년대에 대합관 영성군 곽여겸의 아들이신 곽경공이 17세 젊은 나이로 송나라 문연각 한림학사로 다른 7명의 학사와 함께 고려 인종조에 와서 고려조 최고관직인 문하시중을 지내시고 금자광록대부의 작위와 포산군의 봉호를 받으시니 이분이 우리 포산(현풍) 곽씨의 시조이시다.


포산(현풍)곽씨의 관향

포산(현풍) 곽이라 하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도덕가문으로 친다.

조선조 때 정려가 12개나 되었으니 포산(현풍) 자랑이요 대명사로 통한다.

정려란 충신, 효자, 열녀를 기리기 위해 나라에서 그들이 살던 고을에 정문을 세워 표창하는 일이다.

삼강이 유교사회의 기본적 가치관이었던 옛날에는 정려가 하나만 나도 그 가문과 고을의 자랑거리였는데 하물며 일문에 십이정려라면 그 가문의 영광은 당시 조선천지에 뻗치었다.

우리 포산(현풍) 곽씨 세거지요 문화유산의 집단지인 현풍은 누대로 많은 명현달사를 배출하고 충효열과 선비 정신의 기운이 가득한 자랑스런 우리의 관향이다.

현풍은 신라의 군현제가 구축되면서 추량화현 또는 삼량화현 이라 했으며 757년 (경덕왕 16년)에 현효현으로 지명이 고쳐졌고, 화왕군(지금의 창녕)에 속하였다.

포산이란 수목에 덮인 산이란 뜻이며 이 말의 어원은 비슬산에서 유래된 것이다. 비슬이란 범어(인도의 고대어)의 발음으로써 한자의 뜻이 포(包)라고 해서 포산이라 했다.

조선건국 이후 현풍현과 경산부(성주)에 예속된 화원현을 제외한 달성군 지역 일대가 대구에 속하였고, 현풍현은 15개면을 관할 했다. 달성군지역이 정치적 · 군사적 비중이 높아가면서 1604년(선조37) 경상도 감영이 설치되었다.

근대에 와서 1914년 군, 면 폐합때 현내면, 마산면, 서부면, 모로면이 통합되어 현풍면이 되었다. 면에는 부리 , 상리 , 하리 , 성하리 , 원교리, 대리, 지리, 신기리, 오산리, 자모리 등 11개 동이 있다. 현풍은 군의 남부에 면적은 24.55km'이다. 교통은 구마고속도로의 현풍휴계소가 있고 대구_ 마산간 국도와 대구 - 진주간 지방도가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사적으로 대리에 십이정려각이 있으며 상리에 현풍향교, 원호루, 석빙고 등이 있다.


현풍을 관향으로 하는 우리 후손들의 정신 속에는 선현들의 효열의 성품, 나라의 위기에 대처하는 충정, 청렴한 선비정신이 면면이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