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천녕견씨시조(川寧堅氏),견권(堅權)

작성일 : 2017-12-22 19:09 수정일 : 2018-04-11 21:10

시조 및 본관의 유래(始祖 本貫由來)

천녕(川寧)은 경기도(京畿道) 여주군(驪州郡)에 속해있던 옛 지명(地名)으로 본래 고구려(高句麗)의 술천현(述川縣) 또는 성지매(省知買)인데 통일신라(統一新羅) 때 기천군(沂川郡)으로 고쳤다가 고려초(高麗初)에 천녕현(川寧縣)으로 개칭하여 광주(廣州)에 속하였다. 그후 조선(朝鮮) 예종(睿宗 : 제 8대 왕, 재위기간 : 1468~1469) 때 와서 여주(驪州)로 병합(倂合)하여 그 지역을 직촌(直村)이라 하였다.

견씨(堅氏)의 본관(本貫)은 천녕(川寧)을 비롯하여 사량(沙梁 : 경기도 수원지방)․김포(金浦)․충주(忠州) 등이 있는 것으로「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기록되어 있으며, 모든 견씨(堅氏)의 연원(淵源)은 조선개국공신(朝鮮開國功臣) 견권(堅權)에 두고 있다.

고려시대(高麗時代)에서 두각을 나타내 견권(堅 權)은 서기 918년(태조원년) 태조(太祖 : 왕건)가 왕위(王位)에 오르는 데 공(功)을 세워 염 상(廉 湘)․김 낙(金 樂) 등과 함께 개국이등공신(開國二等功臣)에 책록되었고, 921년(태조4) 달고적(達故狄 : 말갈 부복의 하나) 170여 명이 함경남도 등주(登州)를 거쳐 신라(新羅)의 북변을 침범하려 할 때 이를 쳐서 크게 패배시켰다. 또한 936년(태조19) 태조(太祖)가 삼군(三軍)을 거느리고 후백제(後百濟)의 신 검(神 劒)을 칠 때 대상(大相 : 고려초 문무관계의 하나)으로 견 훤(甄 萱)등과 함께 보병(步兵)과 기병(騎兵) 2만을 인솔하여 좌익(左翼)으로 참전, 후백제(後百濟)를 멸망시키는 데 결정적인 공(功)을 세웠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견권(堅權)을 시조(始祖)로 하고 관향(貫鄕)을 천녕(川寧)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면서 훌륭한 무신(武臣)들을 배출시켰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은 중흥시킨 인물(人物)로는 영군장군(領軍將軍 : 군대를 통형하는 정 4품 무관 벼슬)을 지낸 금(金)과 장군(將軍) 일(一)이 대표적이며, 태조 원년에 창부경(倉部卿 : 전곡을 맡아보던 관청의 으뜸 벼슬)에 오른 수(守)와 사과(司果) 성귀(成貴)는 진사(進士) 희복(希福)과 함께 명성을 날렸다.


 

역대인물(歷代人物)

견금(堅 金) 고려조(高麗朝)에 영군장군(領軍將軍)을 지냈다.

견일(堅 一) 고려 때 장군(將軍)을 역임하였다.

견술(堅 術) 고려에서 창부경(倉部卿)을 지냈다.

견수(堅 守) 고려(高麗) 때 장군(將軍)을 지냈다.

견성귀(堅成貴) 고려 때 사과(司果)를 역임했다.

견희복(堅希福) 사과(司果) 성실(成實)의 아들, 고려(高麗) 때 진사(進士)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