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5(숙종 41)~1807(순조 7). 자(字)는 사징(士澄), 호(號)는 덕암(德巖), 시호(諡號)는 돈희(敦僖), 증판서(贈判書) 세린(世麟)의 아들. 1788년(정조 12) 영변 참봉(寧邊參奉)으로 있을 때, 학행(學行)과 효행(孝行)으로 천거되어 숭례전(崇禮殿) 낭(郎)이 되고, 이어 강릉(康陵) 참봉(參奉)을 거쳐 1791년(정조 15) 품계(品階)가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이어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도총관(都摠管)등을 역임한 후 한성부(漢城府) 판윤(判尹)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