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5(영조 21)~1802(순조 2). 자(字)는 여달(汝達), 호(號)는 귀암(龜巖), 시호(諡號)는 문의(文懿). 경서(經書)에 밝아 학행(學行)으로 이름을 떨쳤다. 1798년(정조 22) 초야(草野)에 묻힌 선비를 찾을 때 함경도에서 추천을 받고 왕앞에 나아가 구경(九經)에 대한 질문 62조(條)를 적절하게 대답하여 많은 상을 받았다. 1801년(순조 1)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로 임명되고, 이어 상의원(尙衣院) 별제(別提)․장릉(章陵) 영(令) 등에 제수(除授)되었으나 불사(不仕)했다. 제학(提學)에 추증(追贈)되었다.